유돌이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1. 9. 7. 22:10 핫이슈

전설의 왼손타자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날. 불과 한 달전까지 함께 웃고 울고, 땀을 흘렸던 동료들의 가슴은 먹먹했다. 당장이라도 빈소가 차려진 부산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한화와의 홈경기에 이어 8일에는 광주에서 KIA전을 치러야 했다. 삼성은 "선수단 분위기에 나쁜 영향을 줄지 모른다"며 발병 사실을 비밀에 부쳤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일단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승리야말로 고인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야통도 야왕도 웃음을 잃었다


평소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시지 않던 류중일 감독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웠다. 장 코치는 류 감독의 학교 선배인데다 류 감독이 1987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 나무 배트에 적응하는 요령 등을 손수 전수해주기도 했다. 류 감독은 "강해보여도 참 여린 분이다. 그래서 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자신과 싸움에서 져버린 것 같다. 발병 사실을 모르고 지냈더라면 오히려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달에 병문안을 다녀왔는데 그 때부터 황달기가 있고 복수가 차있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곧 모든 면회를 사절했다고 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류 감독은 "김용희 감독 시절 2군 코치를 같이 시작했고, 1999년에는 1군에 함께 올라와서 룸메이트로 지낸 적도 있다. 시즌이 끝나면 골프도 같이 치러다니고 그랬다"고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곱씹었다. 그는 "2군에서도 참 열심히 하셨다. 열정을 다하셨는데 꽃도 다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저버렸다. 착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현장에서 뛰던 코칭스태프가 사망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구단과 상의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며 고인과 유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한화 한대화 감독도 "너무 빨리 가셨다. 레전드 올스타로 선정됐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냥 웃고 떠들고 그랬는데 그 직후에 대구 원정을 왔다가 소식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 술도 담배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화 장성호는 "장 코치님은 왼손타자에게는 우상 같은 분이셨다"며 갑작스런 고인의 죽음을 애달파했다.


◇장효조의 아이들, 영전에 바친 승리


신명철은 "워낙 선수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하셨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었다. 아마 선수들 가운데서는 내가 유일하게 장 코치님과 하이파이브를 나눴을 것 같다. 어필할 때는 승패에 관계없더라도 선수의 자신감에 대한 부분이라면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다. 오늘의 작은 승리보다는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채태인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사람 일은 정말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는데 내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더 배울 것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1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고인이 최근까지도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배영섭의 표정에도 침통함이 가득했다. 그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다"고 밝힌 뒤 "겉으로는 강하신데 정말 정이 많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하셨다. 병상에 눕기 직전에도 원정가는 버스 앞까지 나오셔서 타격에 대해 조언을 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지난 해 장 코치님과 함께 타격폼을 뜯어 고친 덕분에 지금 내가 있다. 그립 잡는 법부터 배트의 위치까지 다 바꿨다. 윽박지르기보다는 상담을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제 배영섭에게는 반드시 신인왕을 차지해야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주장인 진갑용은 시즌이 진행중인 점을 들어 류 감독과 코칭스태프만 8일 광주 원정을 마친 뒤 부산으로 이동해 문상을 하기로 했다는 말에 "당연히 선수들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구단에 건의해 1군 선수단 전체가 함께 움직이게 했다. 선수단은 피로도를 고려해 문상만 마치고 대구로 갈 예정이지만 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발인까지 지켜보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기로 했다.


반드시 고인의 영전에 승리를 바치자는 선수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근조 리본을 어깨에 매단채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집중력을 보였다. 삼성의 좌타자 계보를 잇는 채태인과 최형우가 나란히 선취타점과 추가 타점을 올렸고, 배영섭도 3타수 1안타로 분전했다. 중간계투로 나선 안지만은 특유의 힙합 패션을 버리고 모자를 똑바로 착용하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posted by 유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