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공작부서인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으며 17년간 암약해오다 적발된 남한 지하당 ‘왕재산’이 남한의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이들에게 유사시에 타격할 군시설을 정해 지침을 하달했다.
왕재산은 또 민노당의 역할에 대한 보고와 함께 학생운동 활동가 출신으로 구성된 조직의 연구소를 창립하고 신의주에 카지노와 호텔 설립까지 모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최근 검찰이 구속 기소한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총책과 지도부 간부 등 5명은 특전사 훈련 일정부터 대북 공격무기 제원까지 군사기밀급 자료들을 수집해 북한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일보가 단독 입수한 공소장에는 이같은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기재돼 있으며, 이들은 위성항법 위치확인기, 특전사 훈련자료, 스마트 폭탄·야포·공습기 제원, 일본 해상자위대 밀착취재 자료 등을 북한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공안1부 부장검사가 25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북한225국 지령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또 왕재산은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측근의 동향은 물론 민주당, 범민련, 한총련 내부 인사의 움직임과 활동 전망까지 분석해 일체의 기록을 북한 노동당 등에 보고해 왔으며 카지노 경영을 통한 기업화까지 모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왕재산은 지난 4.27 직전 “앞으로 민노당이 야권연대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나갈 과제를 갖게 될 것”이라고 북한에 보고했으며, 학생운동활동가 출신으로 구성된 연구소를 창립해 국내 정치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같은 내용은 총책 김 씨가 연락책인 이모 씨와 함께 지난 2006년 미국 위성이 촬영한 최고 화소급 한반도 위성사진 책자와 노트북, USB 메모리 3개, 하드 디스크 1개를 당시 베이징에 체류 중이던 북한 ‘225국’ 공작조 과장 리진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5년 북한 ‘225국’으로부터 “6·15 공동선언발표 5돌을 맞으며 진행한 평양행사에 대한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들의 내적 동향, 여야정당들의 동향, 진보운동권의 동향, 일반대중의 동향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듬해인 2006년 1월에는 “괴뢰군, 미군, 일본군의 야전교범들, 특히 문서로 된 지상·해상·공중작전과 화력지원 행동에 대한 야전교범자료들, 군사작전계획자료, 항공작전, 상륙작전, 기동상륙작전, 해외 공군 작전현황에 대한 군사자료, 미군의 유사시 기동전개계획자료 등 특정 사안 또는 특정 목표를 대상으로 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고, 구속된 왕재산 조직원 이모씨를 통해 북한 ‘225국’ 공작조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해 2007년 11월 왕재산은 중국에서 북한공작조를 만나서 시뮬레이션 군사게임 프로그램을 전달했다. 2008년 1~2월에는 김정일의 전선 시찰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남한 위성항법 위치확인 및 안내기’ 기자재를 북한 225국 부국장 리명철과 부과장 김철 등을 만나 전달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고 한다.
왕재산은 남한에서 혁명이 발생했을 경우 인천을 폭력혁명투쟁의 전략거점으로 삼기 위해 육군 제17보병사단 102연대, 공병대대, 제9공수특수여단 등을 타격하라는 구체적인 전투지침까지 북한으로부터 시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석유공장과 주안공업단지 등 주요 산업시설물을 비롯해 인천항과 인천시청 등 주요 도로 거점지역과 공공기관도 타격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재산 사건으로 구속된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출신의 이모 씨(48)는 북한에 정치동향 분석 보고를 담당했다. 그는 대선후보 등 정치권 인사의 내부 동향, 여론조사에서 나온 남한 내 인식에 대한 분석은 물론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 등 재야조직의 동향까지 세밀하게 보고했다.
일례로 그가 올해 2월 작성한 한 보고서에는 “현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가 북한의 도발 직후에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상시적 남북 대립 관계가 지속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높다”는 내용이 있다.
왕재산 총책 김씨는 위장업체인 (주)지원넷을 거대기업으로 확대해 공작자금을 대는 한편, 남한사회 내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김씨는 북한 신의주에 카지노와 호텔을 설립하겠다는 계획까지 보고했다.
공안당국은 북한이 남한에서 활동 중인 왕재산 조직을 중심으로 합법적으로 남한 내부의 자금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 합작으로 신의주에 경제특구를 건설한 뒤 왕재산을 이용해 설립한 회사로 끌어들인 남한의 자금으로 다시 남한 내에서 혁명활동을 한다는 구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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